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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

[카이스트 대강당] 9월 27일 2021년 엘림 베이젬바이예프 피아노 리사이틀

양복에 달아둔 높은자리표핀이 탐난다

 

대전에서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시설을 묻는다면 카이스트 대강당, 충남대학교 정심화홀, 대전예술의전당 총 3개를 답할 것이다. 이 중 필자는 카이스트에 소속된 사람으로 카이스트에서 주최하는 많은 행사를 관람할 수 있었다. 위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게 편한 환경에서 접할 수 있었다. 

 

스타인웨이 위너콘서트는 꽤 반갑다. 세상의 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준 피아니스트들을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 그들의 기량이 가장 무르익어 열정적일 때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실황 유튜브 중계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어지간한 라이브 콘서트보다 재미있다. 그 대회에 참가한 음악인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경쟁자들 속에서 자신을 발전시키고 갈고 닦는,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만큼 음악의 성숙도는 뛰어나다.

 

이러한 우수한 연주자들이 경쟁이 끝난 직후 하는 공연이야말로 가장 알맞게 익은 열매를 먹는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스타인웨이도 이를 알기 때문에 위너콘서트를 만든게 아닐까 싶다. 카이스트에게 감사한 것은 이 위너콘서트를 연주하는 연주자에게 미리 손을 풀 장소를 마련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카이스트는 피아노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라!). 서울에서 3~5만원 정도하는 공연을 대전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엘림 베이젬바이예프의 당시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1) 하이든 변주곡 F 단조 (Haydn Variations in F minor)

 2) 쇼팽 소나타 2번 (Chopin Sonata No.2)

 Intermission

 3)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Liszt 12 Etudes d'execution transcendantes)

   Paysage

   Mazeppa

   Feux Follets

   Ricordanza

   Allegro agitato molto

   Harmonies du soir

   Chasse-neige

 

가장 마음에 든 연주는 쇼팽 소나타 2번이다. 휘몰아치는 쇼팽 소나타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느껴진다. 그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오히려 하이든 변주곡이라 생각한다. 하이든은 분명히 고전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서정적 깊이는 들으면 들을 수록 내면이 참 깊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엘림 베이젬바이예프는 그 깊은 내면을 듣기 쉽게끔 바꾸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초절기교는 잘 쳤다 (딱히 기억이 안난다). 

 

이러한 우승자들의 연주를 볼 때 '이 우승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피아노를 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것에 대한 답을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유퀴즈라는 TV쇼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는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된다.

젊은 음악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좋은 프로그램

 

아쉽게도 이 세계에 계속 도전하는 이들은 많다. 엘림 베이젬바이예프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약 2년 전 즈음에 그를 알았으나 그 이후로 그 이름을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없다. 물론 필자가 음악의 감상 활동을 그렇게 넓게 다니는 편은 아니며 한국에 주로 있기 때문에 세계 속의 음악인들을 만날 기회라곤 유튜브 밖에 없으니 그럴 수도 있다.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엘림 베이젬바이예프) 내게 그의 음악을 들려준 것은 어찌보면 우리 둘 사이의 알 수 없는 성공일 수 있으며,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길 기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