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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

[UNIST] 7월 25일, 한여름 밤의 음악회 감상문

2023년, 7월 25일, UNIST (울산과학기술원) 지관서가 홀 에서 있었던 공연에 대한 감상문 

UNIST에서 이렇게 훌륭한 공연이?

 

해당 공연은 UNIST에서 진행된 UPAF (UNIST Performing Arts Festival)의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었다. 해당 행사에 관한 내용은 추후에 별도의 글로 적어보고자 한다. 이 공연의 이해를 돕기 위해 UPAF에 관해 간단하게 적어보자면, UNIST에서 진행된 실내악 축제인 셈이다. 포스터 속, 세 명의 전문 음악가분들이 실내악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이후 학생들이 기간 동안 레슨-연습을 통해 공연을 하는 행사이다. UPAF 행사 기간 동안 음악 지도를 담당할 선생님들의 음악을 들어 볼 수 있으며, UNIST라는 국내 최고 이공계 연구대학 중 한 곳에서 열린 하나의 문화행사이다. UNIST를 방문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아래 사진을 하나 첨부한다. UNIST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곳이다.

 

대략 사방이 다 이러한 풍경

 

필자가 느낀 일반 사람들이 보는 이공계 특화 연구교육기관 (KAIST, GIST, UNIST 등등...)의 학생들의 너디함(Nerdy)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으론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이 만드는 음악은 그렇기에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외진 곳, 감성적으로 메마르기 쉬운 곳에서 연주된 피아노 트리오는 꽤나 신선했으며, 유니스트 지관서가 홀에서의 연주는 사막 속 오아시스만큼이나 인상적인 음악이었다.

 

아렌스키 피아노 트리오 1번은 이 날 처음 감상한 실내악 작품이었다. 아렌스키라는 작곡가는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한 것 같았다. 새로운 곡, 새로운 사람의 실황 연주는 그야말로 신선함이었다. 실내악 연주를 실내악 홀에서 듣는 경험은 흔히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면 대부분 대형홀, 혹은 실내악 홀과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이마저도 소규모 홀은 다목적홀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지관서가는 학생들의 휴게 공간 겸 문화 공간으로 설계가 된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연이 청중에게 꽤나 가깝게 다가왔다. 아렌스키 피아노 트리오를 강한 개성을 가진 세 명의 젊은 음악가를 통해 직접적으로 듣는 것은 뇌에 자신들의 음악 철학을 그대로 꽂아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지관서가에서 리허설 중인 다른 팀의 모습, 위의 삼중주 팀과는 별개임을 밝힌다

 

 - 황건영 피아니스트는 실내악에서 겸손하다. 피아노가 욕심을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부분에서 그는 음악 전체를 위해 언제나 과감하게 소리를 멀리서 가져왔다. 그가 만드는 선율은 때론 투박하게 들리지만 2악장의 화려한 스케일을 들어보면 이 1악장의 투박함이 의도된 것이라고 느껴진다. 

 

 - 이종은 바이올린 교수님은 바이올린의 강함을 숨김없이 뽐낸다. 멋진 여성 바이올린 솔리스트에게 '여제'라는 표현은 종종 사용된다. 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뻗어내고 곡 전체를 휘어잡는 모습은 듣는이로 하여금 이 사람은 때때로 리더이면서도 망설임 없는 활은 망설임 없이 조직을 위해 선택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한 표현이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바이올린 레슨 받을 친구들이 이 때 연주를 듣고 기대반 걱정반이 들었다고 한다 ㅋㅋ)

 

 - 채훈선 첼리스트는 유쾌한 첼리스트였다. 실내악에서 첼로는 근음을 연주하거나, 리듬을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첼로 솔로의 등장 비중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에 비해서 그 빈도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채훈선 첼리스트는 본인의 차례 때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소리를 우리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바이올린이 훌륭한 리더로서의 포지션을 자리매김하였다면 첼로는 바이올린이 어떤 어려운 요구를 하여도 매번 그 이상을 뽐내주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아렌스키 피아노 트리오를 이 날 감상한 소감은 유명 작곡가 이외에도 명곡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작품은 분명하게 하나의 '고전'으로 이해될 것이다. 그 만큼이나 곡의 구조가 탄탄했으며 듣는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멜로디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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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졸라의 '사계'는 아렌스키의 작품보다 인지도가 높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기가 많은 만큼 여러 매체에서도 들어보았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작품이기에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피아졸라 특유의 탱고 리듬은 듣는 이들을 언제나 흥겹게 해준다.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악보의 변형을 최소화 하려는 의견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피아졸라의 탱고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종종 연주되고 피아졸라의 리듬과 멜로디를 존중하며 어느 정도의 변주가 오히려 연주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장르이기도 하다.

 

피아노의 현을 직접적으로 튕기는 연주, 악기를 두드리는 연주, 브릿지 근처에서 강하게 긁어 내는 음과 같은 연주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들이 젊은 음악가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전통적인 연주기법을 파괴하는 현대적인 예술의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이 때 UPAF 행사에 참가해 레슨-연습을 할 학생들의 기대치를 많이 높일 수 있었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전통적 연주자들만큼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기보다는 음악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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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F 행사에 관해 좋은 경험을 약 1년전에 했었다. 이를 보다 상세히 적기 위해 행사의 시작을 알린 공연을 시작으로 글을 써 보았다. 실내악 축제와 실내악 마스터 클래스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 경험이 매우 유의미했고, 이러한 행사가 종종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