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대전국제음악제 행사의 일환
김응수 바이올린 리사이틀이다.
작은 공연
엄청난 음악의 초라한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김응수 바이올리니스트를 이전에 알지 못했다. 그저 포스터 이미지, 곡의 프로그램이 바흐였던 것, 마침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 한몫했다. 관객은 매우 적었다. 아마 50명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응수 선생님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포스를 내뿜는 사진
김응수 선생님을 처음에 알게된 이 포스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에 바로 압도당했다. 활의 아랫부분을 고정하는 뽑아 머리카락처럼 흩날리는 이미지는 소리를 시각화했다고 느껴진다.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김응수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이 그 이미지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삶의 탄생, 그림자 그리고 천국 이라는 키워드는 이 분의 인터뷰와 과거 생애를 읽어보니 잘 와닿는 문구들이다. 우리의 삶은 탄생했기에 살아가는 것이며, 언제나 삶에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기다리지만, 단순히 이를 죽음이라 말하지 않고 천국이라 말하는 것은 이 선생님이 사랑의 이별을 경험했기에 선택할 수 있는 단어이리라. 그 감정을 억누르고 담아 삶을 살아가며 바이올린을 통해 세상을 울리는 음악은 그 깊이가 달랐다.
인상 좋아보이는 푸근한 아저씨
지금까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상은 자기 개성이 너무나도 강하고, 그 개성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김응수 선생님은 약간 나온 배가 주는 푸근한 아저씨, 무표정인 것 같지만 은은하게 보이는 미소, 여유가 보이는 발걸음은 그분이 자신의 음악을 내게 강요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심한 듯한 활 솜씨
필자는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현악기를 배운지 1년 6개월 정도가 지났다. 활을 사용하는 방법은 현의 방향과 수직 한 벡터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김응수 선생님은 그저 팔이 가는 데로 곡선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활이 움직였다. 내가 아는 이론에서 전혀 다른 활의 움직임을 보여주었으나 소리는 완벽했다. 피아노에 비유하면 호로비치의 타건법은 그리 좋은 타건법이라 평가받지 못하지만 그의 소리가 훌륭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은 해프닝
공연 도중에 현이 끊어졌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현이 끊어진 것이었다. 기억에 의하면 파르티타 2번의 chaconne에서 점점 곡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부분이었다. 연주를 멈추시고 무대 뒤로가셔서 현을 교체하시고, 다시 연주를 진행해 주셨다. 어쩔 수 없이 현이 계속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김응수 선생님은 바로바로 음정을 바로 잡아 연주를 해주셨다. 거장의 임기응변을 두 눈으로 본 어마어마한 경험이었다. 이런 사건이 그날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해 준다.
메시지가 없는 바흐에 더더욱 메시지를 없애는 음악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들려주신 바흐는 평온함이었다. 바흐를 사랑하는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은 바흐를 사랑하는 이유가 수학적인 아름다움, 구조의 아름다움, 메시지가 없기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죽음을, 베토벤의 월광은 달빛을 많이 떠올린다. 바흐에서 메시지를 없애기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테크닉을 연마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음악에 어떠한 개성과 의미가 바로 담긴다고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많은 음악을 듣다 보면 사이사이 음악에서 연주자(혹은 지휘자)의 감정, 생각, 습관들이 들린다.
김응수 선생님의 연주는 공허함, 비어있는, 순수함이라는 단어들이 어울린다 생각된다. 하지만 한켠에 슬픔이 외로이 자리 잡은 것 같다. 혹시 모른다. 이 선생님의 내면 한켠에서는 비명을 지르다가 지쳐 쓰러진 사람이 담요를 덮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누워있을지도. 다시 한번 선생님의 음악을 들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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