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FfbXvJXimg?si=aJmCihSpEaNZAcuu
위 링크는 베를린 필, 카라얀 지휘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의 연주이다.
필자는 지난 2월 3일, 한 명의 첼로 연주자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글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에 대한 실황 감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곡을 연주한 연주자의 감성, 당시에 느끼운 놀라운 여러 감정들을 사소하게나마 적어보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시벨리우스 특유의 절절한 감정선과 웅장함의 표현은 나로 하여금 차가운 대자연을 나 홀로 마주하게 한 느낌이었다. 넓고 차가운 바닷가에 단 한 명의 인간으로 마주앉아 지난날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곡이었다. 겸손함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은 곡이다. 전문 교향악단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으며, 아마추어 교향악단은 더더욱 그렇다.
1악장, Allegretto
4분의 6박자라는 약간은 낯선 박자, in 2 지휘지만 첫 박의 쉼표는 마치 베토벤 교향곡 5번처럼 긴장감을 만들어낼까 느꼈지만, 굉장히 편안하게 시작한다. 5개, 3개, 3개의 연음으로 이루어진 화음과 그 위에서 나직하게 들리는 목관 앙상블은 마치 따스한 현악기 위에서 신나게 뛰노는 목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이와 같은 이미지는 순식간에 바뀐다. 그 뒤의 목관앙상블, Letter C 에서 다시 처음 도입부의 리듬과 진행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면 이 도입부는 마냥 따스한 이미지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즉, 이 곡은 처음의 도입부는 기분 좋은 궁금증을 유발했으나, 뒤에서 나름의 답을 보여준 것이다. 나는 이 답을 북유럽의 차가운 대자연을 표현한 것이라 느꼈다. 대표적인 국민악파 음악가인 시벨리우스의 대표작 '핀란디아'를 떠올려보면 그는 종종 북유럽의 자연을 느끼게 해준다. 금관과 현악기의 불안정해 보이는 진행, 단조로 진행되는 반복되는 돌림노래와 파트 간의 주고 받음은 차가운 인상을 준다.
1악장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5-3-3의 저음 화음 진행은 듣는이로 하여금 긴장이 풀리게 한다. 그 뒤에는 항상 격정적인 무엇인가가 나오지만 결국 다시 이 화음으로 곡은 마무리 된다. 이때 내가 느낀 시벨리우스는 교향곡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악장 부터 우리를 내몰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2악장, Tempo Andante, ma rubato
1악장에서부터 아타카로 넘어가는 팀파니의 롤링, 베이스에서 첼로로 연결되는 피치카토, 1악장의 처음과 같이 불현듯 등장하는 바순. 개인적으로 나는 이 2악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따뜻했던 1악장의 마무리와는 다르게 2악장은 처음부터 굉장히 고독하다. 고독함은 2악장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느꼈다. 1악장에서는 자칫 너무 차갑게 들릴것 같은 대자연에서 따뜻한 오두막으로 돌아와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면, 2악장은 따뜻한 오두막에서 느끼는 엄청난 고독함을, 인간의 감정을 보여준다. 오두막밖에 휘몰아치는 눈보라, 혼자 남겨져 느끼는 불안함, 이는 이내 고독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Letter D (Molto largamente)의 금관악기는 절절함의 끝을 보여준다. 금관악기의 음색은 참으로 다채로운데 이 때의 금관은 '절규'소리다. 마치 이 곳에 내가 있다며 끝없이 소리치는 절규로 들렸다. 절규에 지친 주인공은 이내 꿈을 꾸는 이야기처럼 현악기와 목관악기는 약간의 몽환적인 멜로디를 연주한다. 잠에서 깬 주인공은 더더욱 깊은 고독함과 괴로움에 시달리며 오케스트라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상행과 하행 스케일을 연주한다. 그 끝에 다시 Piu moderato e laragemente 가 등장한다. 금관악기의 절절함은 이때는 이 전의 largamente와는 사뭇 다르다. 절절하지만 확신에 차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주인공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Letter K (Andante sostenuto), 이 곡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트이다. 이 곡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깊은 밤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두막 밖의 눈보라는 차츰 그쳐간다. 차가운 대자연에 온전히 자신을 마주한 주인공에게 이제 이내 지평선 먼 곳에서부터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시벨리우스는 우리에게 '너의 고뇌와 생각을 이제 눈부신 태양으로 보답해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어두움에서 밝아지는 서사가 나로 하여금 눈물이 나게 하였다. 나는 이때 첼로 인 풀트에 앉아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였고, 가장 깊은 어두움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3악장, Vivacissimo
끝날것만 같았던 눈보라가 다시 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은 온몸을 다해 이 눈보라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현악기들의 빠르고 웅장한, 동시에 불안한 모습이 여과없이 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Letter E, Lento e suave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이전에 1악장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오보에를 중심으로 클라리넷, 플룻, 첼로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마치 추운곳에서 구조된 주인공에게 따뜻한 음료한잔을 건내주며, '그간 고생을 참 많이 하셨군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며 기운의 회복과 질문, 응원을 해주는 기분이다. 주인공은 다시 떠난다. 위로를 받았다해서 눈보라는 달라지지 않는다. 자연의 혹독함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의미였을까? 실제로 연주할 때도 빠른 속도와 급격히 바뀌는 현의 포지션에 어려움을 겪었다 ㅎㅎ.
두 번째 따듯한 장면, Letnto e suave가 다시 등장한다. 앞의 Letter E와 다른 점은, 첼로가 솔로로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깊은 곳에서 부터 음을 퍼올리는 첼로는 이 여정의 끝을 암시하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불안하게 하향진행을 하지만 곡의 전체 분위기는 계속 고조를 향해간다. 모든 악기가 당신의 그 아름다운 여정에 응원을 더해준다. 계속 고조되는 음악은 바로 4악장으로 연결된다.
4악장, Allegro moderato
3악장으로부터 바로 시작된 4악장, 그 간의 모든 시련과 고뇌, 고독함을 축하해주는 것만 같은 웅장함과 감동이 가득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따스함을 넘어선 감동이 날 찾아온다. 하지만 Letter C, a tempo ma tranquillo에서 갑작스레 분위기가 바뀐다. 비올라와 첼로가 스산한 분위기를 만드는 반복되는 화성을 연주한다. 그 위의 의식하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팀파니의 롤링까지 얹혀져 이전의 경험하지 못한 경치를 다시 만들어낸다. 난 이것을 '세상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 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눈보라는 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깊은 어둠 속에서 바닷가의 벼랑위에 홀로 선 기분이다. 차가운 바람만 불고 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처음에 이 어둠을 완벽하게 극복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1, 2, 3악장을 지나며 주인공은 달라졌다. 망설임도 없고, 실패에 대한 후회도 없어졌다. Letter O, 다시 한번 a tempo ma tranquillo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Letter C와는 다르게 끝까지 나아간다. 차이점이라면 이전과는 다르게 주인공인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주인공의 그 열정과 노력에 감동하여 다 같이 함께 나아간다. Letter R에 들어오면 그 벅차오름의 눈물이 난다. 그 끝에 간신히 장조로 바뀌는 지점은 이 이야기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금관악기의 장대함과 현악기의 열정적인 트레몰로로 이 곡은 마무리된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개인의 성장이 느껴지는 곡이다. 역경, 고난, 고뇌와 같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을 지나오고, 수많은 시련들이 주어지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의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이 곡이 국민악파의 음악이라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간의 여러 교향곡들 사이에서 숨은 보석을 찾고 싶은 클래식 애호가가 있다면 이 곡을 여러번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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