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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

[금호아트홀 연세] 5월 19일 황건영 피아노 독주회 감상문

대한민국에서 클래식 음악인들은 대부분 예원, 예고, 음대, 유학, 귀국 독주회의 순서를 밟는 것 같다 (여기서 조금씩의 변주가 있지만 대다수가 저렇더라). 

 

음악 전공이 아닌 이상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과 사적으로 친해지는 사건은 드물다. 하지만 아마추어 음악인이자, 클래식 음악 열혈 애호가인 본인에게 드물게 그런 사건이 일어나긴 한다. 그렇게 우연의 계기로 알게된 황건영 피아니스트와 친분을 얻게 되었고 그의 귀국 독주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출처: https://www.kumhoarthall.com:448/designer/skin/01/detail.html?p_idx=24414&s_idx=11&vwY=2024&vwM=05&se_idx=

(보다 자세한 정보는 위 이미지 출처 주소를 통해 확인해보자)

 

이번 글은 음악인으로서 새로이 음악을 업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을 공유한 경험을 적어보고자 한다.

 

음악인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공대에서 학위를 받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문과와 이과 중간 즈음에 위치한 특이한 학문을 공부하고 있으며, 취미 생활로 여러 음악활동(활동이라 함은 감상과 연주 정도)을 하고 있다. 이공계에서 자연계열은 세상의 진리를, 공학계열은 세상의 편리함을, 문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정치, 법), 문학에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를 고민한다. 체육계는 명백한 기록이 있고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다고 한다. 미술은 그 대상이 드러난다.

 

음악은 어렵다. 녹음을해도 실황과 명백히 다르고 시간에 귀속되는 예술이며 학문으로써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도 어렵다. 새로운 연주법을 개발하는가?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는가? 새로운 화성 진행을 찾아내는가? 새로운 곡의 해석을 찾아내는가? 

 

모든 음악인은 이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고,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인이란 결국 그 음악인이 보여주는 소리 자체의 매력에서 비롯되기에 나는 곡의 해석과 그 사람이 진솔되게 보여주는 인간의 감성이 매력이라 생각한다 (정상급 연주자들의 테크닉은 이미 모두가 너무나 훌륭하다).

 

국내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백건우, 임동혁, 손열음,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피아니스트는 많다. 위의 인물들이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명성 높은 국제 콩쿨에서 우수한 성과, 우수한 성과는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그들의 음악을 '1번즈음' 듣게 만든다. 그 단 한번에 매료된다. 그 매료되는 순간은 놀랍게도 독주회의 경우보단 콩쿨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매력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콩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보여주었고, 그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이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브람스 피아노 4중주를 연주한 조성진의 모습

 

하지만 이전에 경험한 국내의 여러 귀국 독주회는 자신이 그간의 세월동안 어떤 것들을 배워왔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연주를 많이 경험했다. 그렇기에 음악이 즐겁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솔직한 본인의 모습인지 의아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본인에게 귀국 독주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가?

참고로 이번 모든 레퍼토리에서 친숙한 곡은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곡들 역시 그 인상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Mozart Fantasia in D minor, K.397

무거운 모차르트, 음악인으로서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긴장한 것만 같은 소리였다. 전체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간단한 서양음악사의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시대순으로 대부분 곡의 구성이 되어있는데 바흐와 모차르트의 순서가 바뀌었다. 의아한 상태로 감상을 하였지만 이내 생각은 두 번째 곡을 듣자마자 바뀌었다.

 

Bach Preulde and Fugue in G Major, BWV 860

경쾌한 바흐의 곡, 첫 곡의 박수소리가 떠나기도 전에 두 번째 곡을 시작하였다. 곡의 성격과 매우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이 때부터 긴장은 다 풀어진거 같았다. 프렐류드의 빠르고 경쾌함, 푸가의 대위법과 여러 성부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황건영 피아니스트의 특색 중 하나는 주인공의 성부를 언제나 드라마틱하게 들려주고, 나머지 성부를 철저하게 배경화 시킨다는 것이다. 연주자 본인은 모든 소리를 잘 챙겨 듣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나머지 성부를 찾아 듣기가 어려웠다. 좋거나 나쁘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러한 선택 하나하나가 한 명의 개성있는 피아니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Schumann Kreisleriana, Op.16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를 연주한 것 같았다. 마치 피아노를 좋아하는 학생들끼리 가볍게 피아노 한대를 두고 피아노를 치며 서로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필자는 이 때 졸아버렸다. 곡이 별로여서 졸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백건우 선생님의 리사이틀때도 졸았으며, 정경화 선생님의 리사이틀때도 졸았다. 곡을 잘 모르지만 선율이 아름답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훌륭한 연주를 들으면 저절로 졸음이 온다. 그러한 따뜻한 연주였다.

 

Scriabin Sonata No.5 in F-Sharp Major, Op. 53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기대한 곡. 스크리아빈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장 격정적일 것이라 생각했고, 예상대로였다. 스크리아빈은 채움과 여백을 잘 이용하며, 음의 배경을 잘 만드는 황건영 피아니스트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한다. 인터미션 이전에 들렸던 망설임, 따듯함은 온데간데 없고 본색을 드러낸 것만 같은 격정적인 연주였으며 그 본색안에는 그리움의 사무침을 고요하게 그려낸 것 같은 이미지였다.

 

M. Ravel Gaspard de la Nuit, M. 55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인상주의 작곡가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다. 곡의 마무리를 콘서트처럼 웅장하게 하지 않은 이 선택 또한 인상적이다. 분위기와 색채를 만드는데 그가 얼마나 신통한지 알 수 있는 훌륭한 곡이었다.

 

앵콜로는 4월의 파리, 쇼팽 에튀드 흑건,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 아리아를 연주하였는데 아마 어려운 연주 프로그램을 다 들은 청중들을 위한 그의 작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얼굴을 길어보이게 찍었으나 사실과 다르다

 

그의 연주하는 선명하게 들리는 타건, 하지만 동시에 여러 선율을 극단적으로 분리하여 각 선율 사이의 힘의 관계가 명확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자잘한 습관으로는 울리는 소리를 듣고자 할 때 손을 살짝 들어올려 손목을 돌리고, 연주하기 이전이나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종종 왼쪽 위 허공을 응시한다. 그만의 피아니즘이자 또렷한 색채들이다. 

 

연주 이후에 큰 실수 하나를 했다고 자백(?)하였는데, 필자는 아주 사소한 실수였다 생각한다. 음악에 심취하여 자신의 색채를 온전히 드러낸 연주라면 이미 충분하며, 오히려 진솔되지 못한 연주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 생각한다. 모든 음악을 전공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언제나 그런 열정과 어릴적 음악을 즐겁게 들었던 시절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좋은 영감과 경험을 주기를 희망한다.